쉽게 풀어 쓰는 기도 이야기 53 원망의 기도

찬미 예수님.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 기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특별히 내적으로 두렵거나 뭔가가 불쾌하거나 또는 욕구 불만의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취하게 되는 적응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가 자기 탓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합리화하거나, 실제로는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투사하는 것 등이 그렇지요. 이러한 방어 기제의 가장 기본은 바로 부정입니다. 자신 안에 느껴지는 두려움이든 불쾌함이든, 마주 하기 싫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것처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방어 기제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못 본 척 부정하는 모습을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이야기하는 화, 짜증, 미움, 두려움, 원망 같은 감정들이지요.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일을 겪을 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고, 때론 인간관계 안에서 누군가를 향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들이 느껴질 때 어떻게 하시나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곧바로 하게 되는 반응은 이런 감정들을 없애려는 생각일 것입니다. 부정하는 것이지요. 내 안에 그런 감정들이 있다는 것이 마치도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꾸만 그 마음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요.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루카 23,34 참조), 자기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힘든 일,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을 때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아픔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애쓰기도 합니다. ‘그래, 예수님도 우리더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으니까, 내게 주어지는 십자가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이런 건 힘들다고 불평할게 아니야!’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아픔은 꾹꾹 눌러놓고 가야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떠세요? 이런 모습이 정말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겪게 되었을 때, 하느님을 원망해본 적 있으세요? 네? 어떻게 하느님을 원망할 수 있냐고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에 대해 이런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어느 날 성녀께서 마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는데, 마차가 거리의 도랑에 빠져 바퀴 축이 부서졌지요. 그래서 성녀께서 진흙탕을 밟고서 마차 밖으로 나와서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어떻게 친구를 이렇게 대하시느냐’고 원망을 가득 늘어놓으셨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성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죠. “내 딸아, 나는 내 친구들을 종종 이렇게 대접한단다.” 그러자 성녀께서는 거침없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아, 그렇고 말고요, 주님. 그래서 주님께는 친구가 없는 겁니다!”

성녀께서 하느님, 예수님과 얼마나 가깝게 살아가셨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관계 안에서 성녀께서 늘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좋은 것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나 불만, 하느님께 대한 원망까지도 하나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픈 것, 힘든 것, 원망스러운 것은 속으로 감추고 좋은 것만 꺼내놓는 관계가 아니라, 정말 마음 속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한 관계였던 것이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 힘든 것, 아픈 것은 꾹꾹 눌러놓고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생생한 마음들, 특히나 부정적인 생각, 분노, 원망, 미움 같은 것도 그대로 당신께 내어놓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원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탓 없이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누구 하나 원망할 수 없어서 더 아픈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래, 네가 이렇게 힘들 때 내 탓이라도 해라. 그렇게 해서 네 마음이 나을 수 있다면 내가 그 원망을 다 받아줄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가장 대표적인 예를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 수난이 올 것을 아시고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시죠? “네,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니 저는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하고 기도하셨나요? 아무런 고민 없이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응답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십니다. 다가올 수난이 두렵다고, 그 길을 가고 싶지 않다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당신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제자들더러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시죠. 그 공포와 번민이 얼마나 컸는지,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고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루카 22,39-44 참조)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신비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성의 차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 앞에서 참 인간으로서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토해내셨습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허무함,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어쩌면 이 험난한 길을 요구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원망까지도 다 내어놓으셨던 시간이 바로 겟세마니에서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쏟아내시고 난 후에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속으로는 따르기 싫은데도 그 마음 없는 것처럼 한쪽으로 꾹꾹 눌러놓고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 힘든 마음, 싫은 마음 다 표현한 후에야 ‘그래도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그 길이 쉬워서가 아니라, 아버지 뜻에 저도 동의하기 때문에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하소연의 기도, 원망의 기도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고, 내 십자가를 잘 받아지려고 억지로 참을 것이 아니라, 미우면 밉다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느님께 말씀드리세요. 용서하기 싫다고, 이 십자가를 지기 싫다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세요.

그러고 난 후에라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따라갈 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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