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녀 바르바라 축일입니다.
여러 지방에서 성녀 바라바라 축일(12월4일)에 벚나무 가지를 잘라 꽃병에 꽂아두는 풍습이 있다. 성탄절이 되면 그 가지가 꽃을 피운다. 옛 이교도 시대부터 전해오는 관습이다. 한겨울의 암흑과 추위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물기를 머금으면, 가지는 꽃을 피워 생명의 표징을 보여준다. 우리 내면도 그러하다. 꿈속의 겨울 상징들은 대개 우리 영혼의 상태를 반영한다. 우리 내면이 차가워졌다. 가슴이 차다. 감정이 얼어붙었다.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바르바라 가지는 바로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새 생명이 꽃피게 되리라는 희망을 공고히 한다.
그대 정원에서 나뭇가지들을, 벚나무 가지나 개나리 가지를 찾아 보라. 그리고 그것을 12월4일 성녀 바르바라 축일에 큰 꽃병에 꽂아 그대 방안에 놓아두라. 대림절 내내 그대 안에서 모든 차가움이 사라지고, 그대 안의 한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걸 알게 해주리라. 옛 전통에 따르면 바라바라 가지는 사랑의 가지다. 그것은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비록 지금은 그대 안의 모든 것이 차갑다 해도 결국 사랑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대가 아주 사랑하지만 그에게는 모든 사랑이 사라진 듯 보이는 그대 이웃에게도 사랑이 다시 피어나, 식고 경직된 관계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선사한다.
성녀 바르바라는 부유한 그리스인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그녀를 자신의 교육 이념에 맞게 가르치려 했다. 그래서 딸이 다른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탑에 가두어 버렸다. 비록 바르바라가 탑에 감금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편협한 사고 체계 안에 감금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철학자들을 불러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당성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분노한 아버지는 총독에게 딸을 넘겨준다. 달아날 수가 있었지만, 결국 발각되어 고문을 당한다. 밤에 천사들이 와서 상처를 치료해 준 덕분으로 아침에는 상처받기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 천사를 보내시면 우리의 상처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아주 인상 깊은 상징이다. 천사들이 옥중의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차려준다. 원기를 회복한 그녀는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임종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성작(미사 때 사용되는 제구)과 함께 그려진다. 희망과 새 생명의 녹색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사제의 모습이다. 바로 우리 불안의 감옥에 천상의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그녀는 우리가 죽을 때 추위와 암흑 속에서가 아니라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부드러운 품에서 죽는다고 일러준다. 또 사제로서 그녀는 우리의 삶에 깃든 하느님의 흔적을 밝혀내고, 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결합시키며,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도 꽃피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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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르바라 가지는 겨울 추위 속에서 새 생명을 꽃피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가지들은 우리가 옥중에 있다고 느끼고, 상처 받고, 거부되고 배척될 때조차,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나 풍요롭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Lucia
바르바라가지 성탄절에 피었으면.. 하는 희망도 함께요~~
진건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