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첫 강론을 사목회 총무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 찬미 예수님!!
오늘 강론의 자리에 서게 된 사목회 남성총무인 김남일 정의배 마르코입니다.
말씀주일을 맞이하여 “신앙 안에서의 마음가짐”를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1. 변화 되는 삶 : 아집을 깨고 주님의 말씀 안에 사는 것
다들 법륜스님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제 기억 속에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성당에 강의를 하러 가셨는데 어느 신자가 “스님, 성당에 사람들이 잘 안 나옵니다. 잘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요?”하는 질문입니다. 신부님도 아니고 스님한테 여쭤 본 어리석은 질문 같았습니다. 하지만 법륜 스님은 두 가지로 요약해서 답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답은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한다. 성당에 다니면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하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 자신조차도 변화하지 않는데 주변의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갔겠습니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성당에서는 존경받고 점잖으신 분이 밖에 나가면 혹은 집안에 들어가면 또는 일터에 가면 남의 험담을 잘하고 시기하고 이익에 눈이 먼 그냥 세속적인 사람의 모습이라면 누가 그 모습을 보고 성당에 나오려 하겠습니까? 하십니다.
두 번째 답은 그렇게 변화되는 것이 잘 안 될 것이니 노력을 해야 한다. 말씀과 사랑의 계명을 잊지 않고 행하여야 한다. 성당, 가정, 사회에서도 자기 아집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하십니다. 이처럼 자신을 갈고닦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성당에 사람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순서가 잘못 된 것이다. 하십니다. 참으로 반성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너나 잘하세요.” 입니다. 성당에 사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 : 영혼을 돌보는 자비와 용서
주님 말씀을 따르려고 애를 쓰다보면 그런 노력들은 향기가 됩니다. 그 노력 자체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생각됩니다. 듣기만 해도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예전에 커피 광고 중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이란 문구는 그리스도의 향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가득하신 따뜻한 사람이 몇몇 떠오릅니다. 예수님, 성모님, 착한 사마리아인, 김수환 추기경, 마더 테레사, 마리아 막달레나, 프란치스코 교황님 등등. 떠 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성인에 오르시거나 그에 가까운 분들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도 그분들을 잘 살펴서 노력해보자는 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공통점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그분들은 배려와 존중으로 기품이 넘치십니다. 즉,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십니다. 마더 테레사 성인께서 가난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정성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시대에 억압 받는 이들을 살뜰히 돌보셨습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영혼을 돌보시는 자비로운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을 본받아 저는 누군가 만나면 “이 사람은 하느님의 영이 함께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먼저하고 대면하려 합니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법과 위로를 함께 찾기를 반복하다보면 진심의 하느님이 제 옆에 항상 계실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분들은 용서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억울하거나 괴로운 일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당한 것 보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더 클 때가 많습니다. 그 당시 피해 본 일들은 잊어버려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그냥 평생 원수가 됩니다. 그 사람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고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 분이 한 두 명 정도는 있으실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신부님께서 용서하는 방법을 얘기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씀이 기억납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빠르고 쉽게 하려면 이렇게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용서를 하실 때는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일 수도 있고 성모님 일 수도 있고 또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속엔 평화와 미소가 가득해집니다. 그 순간 미워하는 그 원수는 아주 작게 느껴집니다. 그때에 옷에 먼지를 툭툭 털어내 듯이 그 원수를 용서 하세요.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시면 그 사랑하시는 분이 나와 함께 웃고 계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용서하는 것은 자비로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 이후로 저도 누군가 잘못한 이를 용서할 때 사랑하는 이를 떠올립니다.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떠올립니다. 저 여인이 미소 짓고 계신데 용서 못 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 했을 때도 진심으로 그분께 제가 먼저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는 그 시작과 끝에는 사랑하는 그분이 항상 계십니다.』
3. 순례 : 주님의 것을 내 마음속에 채워가는 여행
‘가시나무새‘란 노래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 안에 가시 같은 원수, 내 것, 내 고집으로 채우면 고통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마음 안에 평화의 주님, 자비로우신 성모님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겠습니까?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인생이 자기가 맘먹은 대로 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집과 자만의 굴레에 있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괴롭고 슬플 때에 주님을 바라보면 어느새 내 고뇌는 아주 작은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주님 뜻대로 오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없던 용기도 새로 나는 것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무언가 사랑하거나 좋아하면 그처럼 된다고 하지요. 주님을 좋아하면 주님 사람, 성모님을 좋아하면 성모님 사람이 되십니다.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분이 좋아할 일을 해야 사랑이 되고 향기가 될 것입니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용서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님의 것을 내 마음속에 하나 둘 채워가는 것은 아마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의 신앙 순례와도 같을 것입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어떤 한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노래를 듣다가 우연히 노래를 만드신 수녀님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말씀이 오늘 강론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강론은 잊으셔도 영상만 기억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시는 걸로 강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