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초월하는 ‘영적 인간’으로 건너가야
파스카 잘 하고 계신가요? 지난 몇 주간에 걸쳐 우리는 파스카의 영성적 의미를 살펴보았고, 우리 신앙생활의 근본이 끊임없이 파스카 하는 과정이라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파스카의 의미가 건너간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도 나 중심의 삶에서 너 중심의 삶으로 끊임없이 건너가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건너가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파스카의 삶을 마다하는 분은 아마도 안 계실 겁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 하느님을 따라, 예수님을 따라 온전한 사랑의 삶을 자유롭게 또 기쁘게 살기를 바라죠.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바람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 중심에서 너 중심으로 건너가고 싶은데 어떻게 건너갈 수 있는지,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지가 늘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각자 깨달은 방법을 통해서 이러한 건너감의 삶, 곧 영적인 삶을 살고자 애쓰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또 조금 되는 것 같다가도 어느 틈에 보면 다시금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모습에 실망하고 지치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파스카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삶을 먼저 살아가신 분들, 자신의 방법을 찾아내서 건너감의 삶을 꾸준히 살아가신 분들이 아마도 교회의 성인들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분들이 여러 수도회의 재속회나 기도학교를 통해서 이 길을 가기 위한 도움을 받고 계시죠. 하지만, 이 연재기사의 맨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 성인들의 영성과 이를 따르는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다른 분들에게 맡겨드리고 여기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지금까지 우리가 다루어 온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단순하게 위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나’라는 인간 존재는 몸의 차원, 정신/마음의 차원 그리고 영의 차원을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몸의 차원과 정신/마음 차원에서 움직여지는 원리는 계속해서 ‘나’를 향해 움직이려고 하는 뿌리 깊은 나 중심성을 보이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기심’과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몸과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고 자꾸만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몸과 마음을 지닌 생명체로서의 당연한 생명충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충동을 따르는 한, 우리는 언제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 안에 자리하고는 있지만 인간적인 영역이 아닌 하느님의 영역, 곧 영의 차원에서는 어떻습니까?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방향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자, ‘너’를 향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께서는 근본적으로 ‘내가 아닌 너’를 향하는 움직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은 언제나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 집중되어 사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처럼 내가 아닌 너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의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것’이죠.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움직임을 놓고 볼 때, 몸이나 정신/마음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육적 인간’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자체로는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따질 대상이 아니지만, 몸과 정신/마음 차원의 원리를 있는 그대로 따르다 보면 그 결과로 주어지는 행동은 육의 행실(갈라 5,19-21 참조)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너 중심의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 곧 ‘영적 인간’의 삶의 방식이죠. 이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사는 삶이기 때문에 초자연적 은총의 생활이며, 그 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갈라 5,22-26 참조)를 얻게 되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육적 인간의 삶의 방식에서 영적 인간의 삶의 방식으로 건너가는 것, 뿌리 깊은 나 중심성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너 중심으로 건너가는 것,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에서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자기초월로 건너가는 것, 이것이 바로 파스카하는 신앙의 삶인 것이죠.
전에 영성이 무언가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영성을 ‘영-썽’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영성이라는 것이 다른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 삶의 영적인 차원을 가리키는 말이고, 따라서 영성생활은 곧 영적인 차원을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씀드렸었죠. 그런데 이 영적인 차원을 살아간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가 바로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입니다. 영적 인간으로, 너 중심으로, 자기초월로 건너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렇게 건너가는 것을 의식하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파스카 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의미에서의 영성생활이고 우리의 신앙생활, 기도생활인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에는 우리가 이 파스카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나 중심에 머물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러한 유혹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우리가 너 중심으로 건너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여정을 전체적으로 밝혀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일까요? 바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 신앙 여정의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버리는 것’, 둘째는 ‘제 십자가를 지는 것’ 그리고 셋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셋 중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또 힘겹게 느끼는 부분은 ‘자기 십자가를 진다’라는 부분일 텐데요,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뿐만 아니라, 자신을 버리는 것(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너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