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쓰는 기도 이야기 37 가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식별

가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식별

‘근본과 수단’ 어떤 가치를 먼저 선택하겠습니까?
‘복음삼덕’은 근본 가치 위한 도구
추구하는 가치 성찰하고 식별해야


작년이던가요. 신학생들과 월 면담을 하면서 미리 나누어준 면담지에 가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치들 중에서 특별히 복음삼덕인 가난과 정결, 순명에 대해서, 각각의 가치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또 자기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죠. 학생들이 나름으로 묵상하고 정리해서 면담지를 써오긴 했지만 면담 때 대부분 하는 이야기는 ‘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덕이 복음삼덕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실제로 그 내용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각각의 가치들이 다른 가치들과 충돌할 때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순명과 정의라는 가치가 상충할 때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치’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가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 느낌이 드십니까? ‘우리는 하느님 나라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래도 좋은 느낌, 긍정적인 마음이 드시죠? 내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일이겠지만, 여하튼 이런 가치들에 반대하기보다는 동의하는 분이 더 많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치라는 것 자체가 좋은 느낌, 긍정적인 동의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가치들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더 고민하지 않게 되는 위험성이 있기도 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사랑’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다 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도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성찰하고 식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느님 나라’라는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할 때,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독자 여러분께서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분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곳, 그래서 하느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실 겁니다. 또 어떤 분들은 마음의 아무런 고민도 어려움도 없이, 또 현실에서의 수고와 고단함 없이 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짧은 내용만으로 단정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첫 번째 내용이라면 지난주에 말씀드린 객관적 가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두 번째 내용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객관적 가치가 아니라 나에게만 의미가 있고 그래서 중요한 주관적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또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사랑을 추구하고 계십니까? 내 주위에 있는 가까운 이들,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그런 이들과의 사랑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이에게만 향하는 사랑을 추구하시나요? 아니면 생각이나 성향이 나와는 달라서 만나면 불편하고 어렵고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그 사람의 존재 역시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하시나요? 사랑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그 사랑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나만을 위한 주관적 가치로서의 사랑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중요한 객관적인 가치로서의 사랑인지는 계속해서 성찰하고 식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이루는 가치에 있어서 이처럼 그 가치들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내용이 객관적인 가치인지 주관적인 가치인지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이러한 가치들의 순서를 묻는 것입니다. 주관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가 추구하는 객관적 가치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던 순명과 정의의 경우에서처럼 때론 선택해야 할 가치들 사이의 혼란이 생기는 것이죠.

이처럼 가치들의 순서를 다루는 면에 있어서 우리는 근본적 가치와 수단적 가치 사이의 구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가치들 중에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가치들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근본 가치가 있는 반면에 이러한 근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수단으로서의 가치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근본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일치’ 그리고 ‘그리스도를 뒤따름’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죠.

그럼 이런 우리 신앙의 핵심 가치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수단적 가치, 도구적 가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가난과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이 바로 대표적인 수단적 가치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 정결을 지키는 것, 순명하는 것은 모두 그 자체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객관적 가치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그 자체로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근본 가치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하나의 구체적인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닌 가치인 것입니다. 이처럼 가치들 사이의 질서, 곧 근본 가치와 수단으로서의 가치들을 구별할 수 있다면 혹여나 가치들 사이의 충돌이 일어날 때에도 우리는 어떤 가치를 더 먼저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간혹 신자분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사제는 수도자와는 달리 독신과 순명 서약만 하지 가난에 대한 서약은 하지 않기 때문에 꼭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죠. 어떠세요? 맞는 말씀인 것 같으신가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제가 수도자처럼 가난에 대한 공적인 서원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라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이라는 가치는 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복음삼덕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의 모습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관계를 다루면서, 지금까지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이루는 ‘가치’라는 요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현실의 나의 모습을 이루는 요소인 ‘욕구’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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