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나를 움직이는 힘
내 행동의 원인 ‘욕구’ 알면 영성이 보인다
욕구는 없앨 수 없는 근본 성향
실체 파악해야 행동 선택 가능
우리는 현실의 나의 모습과 또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모습 사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 긴장관계를 살펴보면서, 그중에서 이상 자아의 축을 이루는 가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의 나의 모습을 이루는 주된 구성 요소인 욕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들 모두는 스스로에 대해 바라는 모습이 있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싶다’ 하는 바람이죠.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 현실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근본적 긴장관계이고, 이를 풀어내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가치가 주관적 가치인지 객관적 가치인지, 그리고 여러 가치들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자꾸 이런 방향으로 행동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성찰입니다.
예를 들면 주위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느라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죠. 하지만 이 사람의 경우는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것도 벅찬데 다른 이의 부탁까지 맡아서 하느라 꽤나 고생을 합니다. 몸은 몸대로 힘들고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죠. 그래서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절대 들어주지 말아야겠다, 잘 거절해야겠다고 매번 다짐을 하지만 또 누군가가 무언가를 부탁해 오면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더라도 자신이 맡기 어려운 일에 대한 부탁은 잘 거절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죠. 부탁이 있을 때마다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하고서는 또 그런 자신을 후회하고 질책하는 모습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매번 후회를 하면서도 새로운 부탁 앞에서는 거절을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이 사람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이끌어 가는 힘,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거절을 못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우리는 ‘욕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즉, 나를 계속해서 어떤 한 방향으로 행동하게끔 이끄는 요소가 바로 욕구인 것입니다. 너무나 쉬운 예로, 오늘 너무 바쁜 하루를 지내느라 점심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배고픔과 식욕을 느끼게 되죠. 그리고 이런 식욕이 우리로 하여금 저녁식사를 평소보다 일찍 먹게 한다거나 아니면 더 많이 먹게끔 우리 행동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 준비 때문에 계속 긴장해있고 신경이 곤두서 있다면, 어서 빨리 그 일을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죠. 이때 이 ‘쉬고 싶다’라는 마음 역시도 하나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 욕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아마도 우리 안에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들 것입니다. 욕구는 좋지 않은 것, 나쁜 것이기 때문에 늘 참고 억누르거나 아니면 내 안에서 잘라버려야 하는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구라는 것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이를 따른다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자신의 욕구를 절제해야 하고 (억눌러야 하고) 욕구보다는 이성의 명령을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라고 우리는 교육받아왔던 것이죠. 사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결국에 바라는 모습은 욕구를 따라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람이 은연중에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욕구라는 것이 나쁜 것이고, 그래서 우리 안에 있으면 안 되는 것, 있다면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생각인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복음적 삶을 살기 위해서 교회는 십자가, 희생, 순명, 절제 등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당연히 따라야 할, 그리고 따르고 싶은 좋은 가치들, 객관적 가치들이죠. 그런데 이러한 가치를 따르는 모습의 반대쪽 면은, 그러기 위해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본능적, 충동적 욕구들을 최대한 잘라내고 억눌러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온 면이 적지 않고, 그래서 십자가를 따르는 삶이 엄청나게 고단하고 힘든 삶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물론 예수님 말씀 따라 ‘제 십자가를 지고’ 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수고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은 아니라는 것.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다시금 욕구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욕구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는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기본적으로 욕구는 우리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욕구는 생물학적-심리학적 차원에서 비롯되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경향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의 뿌리 깊은 나 중심성이나 몸 차원, 정신/마음 차원의 원리, 그리고 사욕에 대해서 다루면서 여러 차례 강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욕구들을 있는 그대로 다 따라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국에 우리가 바라는 바는 충동적인 욕구를 넘어서서 합리적인 이성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우리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몸의 차원, 정신/마음 차원의 원리가 아니라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욕구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욕구와 그 욕구를 따라 움직이는 행동,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욕구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적어도 그 욕구를 따라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 하는 부분은 우리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별과 선택에 대해서 앞으로 계속 말씀드리겠지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고 있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이러한 욕구가 나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는지를 알고 난 후에라야, 그 욕구를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어떤 욕구들이 있을까요? 이런 욕구들이 우리를 어떻게 움직여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