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14 나는 누구?

나는 누구?

자기 정체성 알아야 삶의 원리 이해할 수 있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인간’
존재에 대한 답의 근원은 ‘하느님’


지난주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존재는 하느님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 하느님 안에서만이 내 삶의 근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조금 어렵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쉬운 말로 하면 이는 결국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이야기죠. 그리스도교 삶의 원리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웬 정체성 이야기냐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삶의 원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중독에 빠져있는 어떤 형제님이 계시다고 생각해 볼까요? 이 분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죠. 퇴근 시간이 지나도 회사에 남아 야근하는 날이 허다하고,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날에도 집에서 회사 일을 붙잡고 있기 일쑤입니다. 주말이라고 다를 바 없죠. 그러다 보니, 가족들의 불만은 커져만 갑니다. 부인은 부인대로,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아이들 교육 문제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어 시무룩해 합니다. 그래서 일을 내려놓고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마련하자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 형제님은 요지부동입니다. 결국, 가정의 화목은 깨지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형제님께 왜 그렇게 일에만 매달리느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가장의 역할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그래서 부인이나 아이들이 서운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자기 자신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이 형제님에게 가장 중요한 답은 바로 ‘나는 가장이다’라는 정체성이었고, 이러한 정체성에서부터 이분의 삶의 목표, 곧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 곧 ‘삶의 원리’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누구로 이해하는가에 대한 정체성 문제는 삶의 원리를 찾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입니까?


이 질문도 사실은 많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을 찾으셨나요? 흔히 우리는 각자의 이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란 것은 나에게 붙여진, 누군가 나를 일컫기 위해 붙여진 하나의 약속일 뿐이지 정작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누군데?’라고 다시 묻게 되죠.

다른 한편으로, 각자가 맡은 역할이나 직업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엄마다/아빠다.’ ‘학생이다/교사다.’ ‘화가다/야구 선수다.’ 하지만 이러한 대답들 역시 ‘나’의 전부를 다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엄마/아빠지만, 동시에 부모님 앞에서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지만, 퇴근 후 집에서까지 선생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합 중에는 야구 선수지만, 부인과 함께 쇼핑을 할 때도 야구 선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답들은 나라는 사람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 또 내 삶 전체가 아닌 어느 한 부분에서의 원리만을 알려주는 답들입니다.

그럼 또 뭐가 있을까요? 직업이나 역할처럼 삶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알려주는 정체성의 차원이 있습니다. ‘사제/수도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만 사제이고, 본당 밖에서 개인적인 일을 볼 때는 사제가 아닌 것은 아니죠. 수도자도 수도원에서 지낼 때만 수도자이고, 휴가로 집에서 지낼 때는 수도자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느 곳에 어떻게 있든 상관없이 그의 일생을 통해서 사제/수도자로 ‘있는’ 것이고, 따라서 사제/수도자로 잘살아가는 것이 그 사람 삶의 전체적인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도, 사제/수도자의 삶이 여타의 직업과 같은 삶이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부분이 사제/수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되죠. 왜냐하면, 사제/수도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도 일상의 어느 한순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하루 성당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시장에서도 미용실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답을 얻어도, 여전히 뭔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던 때, 곧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때도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가 늘 언제나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인간’이라는 정체성 앞에서도 우리의 물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왔으며, 그 끝은 어디로 향하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물음 앞에서 ‘인간’이라는 답은 여전히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으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없애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건물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건물 전체의 모습이 어떤지를 볼 수 없죠. 마찬가지로, 인간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인간이 누구인지, 그 삶의 전체 모습이 어떠한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하느님에게서 찾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 혼자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또 내가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간에, ‘나’라는 존재는 그 첫 시작부터 하느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 삶의 근본 원리를 찾기 위한 출발점인 것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0)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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