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쓰는 기도 이야기 15 독수리 날개를 타고

독수리 날개를 타고

‘당신께로 우리를 불러주신다’ 믿음 지녀야

‘하느님’이라는 분명한 목적 존재
다른 길 가더라도 불안할 필요 없어


우리 각자가 하느님 작품이라는 것 많이 생각하셨어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나는 하느님이 지어주신 작품이다’라고 생각하시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그래, 정말 하느님께서 작품 하나는 잘 만들어주셨네!’ 하는 마음이 드십니까? 아니면 ‘아니, 뭐 이런 걸 작품이라고 만드셨을까?’ 하는 마음이 드시나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찬찬히 놓고 살펴보면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나 자신이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것이 그다지 믿어지지 않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 자신이 아무런 흠 없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뛰어난 사람이어서 하느님의 작품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일까요? 우리가 하느님의 작품인 이유는, 우리를 지어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훌륭해서 작품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작품인 것입니다. 작가를 믿는다면, 그 작가의 작품 중 어느 한구석 이해 안 가는 곳이 있더라도 그 작품에 대한 믿음을 둘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 크게 지닐 때,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를 그분 작품으로 더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대한 어떤 믿음이 필요할까요? 하느님께 대해 두고 있는 믿음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당신께로 불러주신다는 믿음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모상대로 짓기만 하고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로 가까이 오라고, 와서 함께 친교를 나누자고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모양새가 어떻든 간에, 하느님께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마침내 가야 할 곳, 목적지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두해 전 여름 강원도 횡성에 있는 수도원으로 피정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원래 수도원 피정 집에 가면 식사를 해주시는데, 그때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가 알아서 해먹기로 했죠. 첫날 도착해서는 짐을 풀고 바로 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읍내에 있는 가장 큰 마트를 소개받아서 피정 동안의 먹거리를 잘 사고 돌아왔죠.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맘껏 기도만 하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로 계란 프라이를 해 먹으려고 보니까, 식용유하고 소금이 없는 겁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괜스레 수녀님들께 폐 끼치기보다는 잠깐 마트에 가서 사오자 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전날의 그 마트를 찾아가서 원하던 식용유와 소금을 사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오는데 우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길눈이 어두운 편인데, 내비게이션도 안 켜고 마트를 두 번이나 잘 찾아갔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내비게이션 없이 돌아오다가 길이 헷갈려서 좌회전해야 할 곳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살짝 당황했죠. 조금 더 가니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더군요. ‘아, 저리 들어갔다가 다시 돌려 나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들어서는데 그 길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고속도로 입구!’ 조금 더 당황했지만, 그래도 돌려나오는 길이 있겠거니 하고는 계속 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고 결국 고속도로를 타야만 했죠. 고속도로에서도 또 금방 갈림길이 나와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단 오른쪽 길을 탔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내비게이션을 켰더니, 수도원으로 돌아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25㎞를 더 가서 다음 출구에서 나갔다가 다시 반대로 고속도로를 타고 와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뭐, 계란 프라이 하나 먹겠다고 식용유 사러 나왔다가 왕복 백 리도 넘는 길을 돌아오게 된 거죠. 짜증도 났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경치 구경이나 하는 셈 치자” 마음먹고서는 터널도 두세 개 지나고 산 구경도 실컷 하면서, 그렇게 한 시간 길을 돌게 된 다음 피정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비록 배는 고팠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불안하거나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었죠.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제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가고 또 잘못된 길로 들어서더라도, 제게는 가야 할 곳, 피정집이라는 목적지가 분명히 있었고, 언젠가는 그곳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길눈이 어두워 겪었던 우스꽝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목적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라는 하나의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죠. 이 길을 가다 보면 때론 멀리 돌아가는 것도 같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정말로 잘못 가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불안해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온전히 내 힘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잘해서, 길눈이 좋아서 불안해하지 않고 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러주시고 데려가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삶의 모습에 대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사목헌장」 19항)

우리가 하느님의 작품인 이유는, 우리를 지어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불러주시고 데려가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하느님의 작품으로서,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은 부르심에 응답해 가면 됩니다. 하느님과의 근본적인 관계 안에 있음을 의식하면서, 하느님께서 데려가 주시는 대로 하느님을 향해서 계속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성’이고 ‘삶의 원리’입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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