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쓰는 기도 이야기 20 나 중심

‘나’ 중심

몸과 정신의 기본원리는 ‘자기지향적(自己指向的)’
이기심과는 달라… 윤리적으론 ‘중립’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런 시간들을 바라고 기대하죠. 그런데 우리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마냥 그렇지마는 않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 기쁨이나 행복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굳이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나 스스로 기쁘게 살고 싶은데, 기쁘게 사는 것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여러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이해라든가 ‘고통’의 의미를 찾는 것 등이 그러한 것들이죠. 그런데, 이런 다양한 관점들의 가장 밑바닥에 공통되게 놓여있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몸의 차원’과 ‘정신의 차원’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차원들의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인간에 대한 이해 부분을 다루면서 우리는 인간이 ‘몸’ ‘정신/마음/영혼’ ‘영’의 세 차원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몸’의 차원이나 ‘정신’의 차원이 우리 인간의 것이라면, ‘영’의 차원은 인간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 곧 하느님의 영께서 인간 안에 머무르시고 활동하시는 자리죠. 그리고 이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우리가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더라도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몸의 차원이나 정신/마음의 차원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열심한 마음으로 기도하려고 해도 며칠 끼니를 굶어 배가 고프다면 뭔가를 먹지 않을 수 없죠.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 따라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기 원하지만, 나에게 상처 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화가 생겨나는 것을 억지로 없앨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기뻐하고 싶어도 기쁠 수가 없는 노릇이지요.


이렇게 우리 몸의 차원과 정신/마음 차원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은 우리가 육신과 정신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느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1코린 13,12)하고 만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몸의 차원과 정신/마음 차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차원은 우리의 현실 경험, 곧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지 못한 우리들의 현실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차원의 원리들이 행복을 향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 원리들이 ‘나’라는 사람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지 그 방향성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움직이는 두 차원의 원리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원리들이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향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예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벌써 여러 번 말씀드리는 예이지만 몸 차원에서 본다면, 배가 고플 때 먹을 것을 찾는 것, 피곤을 느낄 때 휴식이 필요한 것, 상처나 병이 있을 때 그것을 낫게 하려는 움직임들이 ‘나를 향한’ 움직임의 예입니다. 마음 차원도 마찬가지죠.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움직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가가고, 싫어하는 사람은 피하게 되죠. 좋아하는 일은 찾아서라도 하지만, 싫어하는 일은 주어진 것도 마다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몸 차원, 마음 차원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움직임입니다.

이러한 움직임, 곧 우리 몸에서든 마음에서든 그 움직임이 나를 향해 가는 이 방향성을 우리는 ‘자기지향성’ 또는 ‘나 중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하는 방향, ‘나’를 즐겁게 하는 방향, ‘나’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것, 그래서 어찌 되었든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모습인 것입니다.

네? 꼭 그렇지마는 않은 것 같다고요? 배가 고프다고 그때마다 먹을 것을 찾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일이라고 꼭 안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네, 맞습니다. 우리가 매번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실제 행동은 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서 움직이는 몸 차원, 정신 차원의 원리들이 자기지향적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그 방향성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나 중심’의 모습이 ‘기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방향성을 따를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지만, 나 중심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모든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방향성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자기지향성’ 또는 ‘나 중심’으로 움직여가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의미에서의 ‘이기심’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몇 끼를 굶어서 배가 고픈 사람, 그래서 무언가 먹을 것을 원하는 사람더러 우리가 “이기적이다”라고 하지는 않지요.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해서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에게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나 중심’의 모습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기지향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기지향성’은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지닌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방향성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보면 ‘선’이나 ‘악’이 아닌 중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존재론적 입장에서는 오히려 ‘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픈데도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면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결국에는 굶어죽게 되는 것처럼, 어느 한 존재의 유지와 안녕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기지향성’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몸의 차원과 정신/마음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원리들은 근본적으로 ‘자기지향성’을 띠고 ‘나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립니다.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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