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쓰는 기도이야기 22 뿌리 깊은 '나 중심성'

우리는 ‘나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향성과 ‘너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몸과 정신/마음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나’를 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을 띠지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너’를 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나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냐 ‘너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냐 선택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어떠셨어요? 어느 것을 선택할지 마음을 정하셨나요?

모르긴 몰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이시라면 모두 ‘너 중심’의 방향을 선택하길 원하실 겁니다. 굳이 ‘나 중심-너 중심’이라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내용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고 그래서 이미 해 온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애덕 실천’ ‘형제적 사랑’ ‘자비’ ‘용서’ ‘하느님과의 일치’ 하는 표현들이 다 나 중심이 아닌 너 중심의 모습을 드러내는 표현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가치로서의 선택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너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죠.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선택을 실제로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 나 중심이 아닌 너 중심을 택하겠지만, 실제 삶에서는 너 중심이기보다 자꾸만 나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너 중심의 삶을 살기를 원하면서도 자꾸만 나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나 중심’이라는 움직임의 근본적인 성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의 자기지향성이 그 자체로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먼저 챙기고 싶어 하는 경향이 내가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못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욕구, 필요는 나의 몸과 마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몸의 차원, 정신/마음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는 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것을 실제로 나의 것으로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예로 들어볼까요? 한 끼 두 끼 식사를 걸렀을 때, 우리는 ‘나’의 배고픔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걸렀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배가 고플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맞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 다른 사람의 배고픔을 내가 직접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 끼니를 걸렀으니까 배가 고프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돌부리에 채여 발에 통증을 느낄 때도, 만일 나의 발이 돌부리에 채였다면 그 통증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지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우리는 그 통증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마음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죠. 사랑받지 못했을 때의 서운함, 무시당했을 때의 원망과 분노 등의 마음은 그것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 직접 느끼게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서운함이나 상처 등을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 이렇게 다른 사람의 신체적, 심리적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 또는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대인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어느 정도 이상의 나이가 되어야 하고 또 공감하는 연습이나 훈련이 필요합니다. 서너 살 된 어린 아이에게 다른 사람의 처지나 필요를 이해하거나 공감해줄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 이유입니다.

인간 존재의 ‘나 중심성’에 대해서 자꾸 말씀드리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자꾸 되풀이해서 다루는 이유는, 이 ‘나 중심성’이 나라는 한 사람의 존재에 있어서 사라질 수 없는 근본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나이에 이르는 것도 필요하고 또 그를 위한 연습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죠. 달리 말씀드리면, 어느 정도는 인격적으로 성숙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격적으로 성숙하더라도, 그 사람의 몸 차원, 정신 차원에서의 나 중심성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럼, 우리 교회의 성인(聖人)들은 어떠셨을까요?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오르고 그래서 여러 영웅적인 덕행과 모범의 삶을 보여주셨던 성인들이시라면,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해왔던 ‘나 중심성’이 하나도 없는 분들이셨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들이어도 우리와 똑같이 몸과 마음, 정신을 지닌 한 인간이었기에, 그 안에서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리들은 여전히 나 중심을 향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그분들도 허기를 느끼고 피로를 느끼고, 또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대낌들도 똑같이 겪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인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에서 차이 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감히 성인들에 비할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나 중심의 움직임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내 안에 나 중심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나 중심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너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인 것입니다. 나 중심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욕구는 언제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편안하게 너 중심의 움직임을 따랐던 것이 성인들의 모습입니다. 너 중심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지만, 큰 힘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나 중심의 욕구에 얽매여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있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엔 다시금 선택의 문제로 돌아가게 됩니다만, 이러한 선택에 앞서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찌 되었든 내 안에는 ‘나 중심성’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너 중심으로 살기를 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안에 있는 ‘나 중심성’을 없앨 수 없다는 것!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선택을 위한 첫걸음이며, 동시에 ‘겸손’이라는 덕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겸손 그 자체는 우리 자신을 실제 있는 그대로 아는 진실한 앎이요, 깨달음입니다.”(「무지의 구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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