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쓰는 기도 이야기 29 파스카 하셨습니까?

‘파스카’라는 말을 들으시면 어떤 것이 떠오르십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떠오르시나요?


예전에는 이집트 탈출과 관련한 유다인들의 축제를 가리키는 이 말을 ‘과월절’ 또는 ‘유월절’로 번역해서 썼지만, 이제는 이 말을 한자어로 번역하지 않고 ‘파스카’라는 원어 그대로 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관련해서도 ‘파스카 성삼일’이나 ‘파스카의 신비’ 등의 표현을 많이 쓰지요. 그래서 이제는 이 파스카라는 말이 우리에게 조금은 더 익숙한 용어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여전히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성경이 전하는 저 옛날에 있었던 사건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물음을 한 번 드려볼까요? “‘파스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어떠세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그래도 쉽게 떠오르는 분이 많이 계시죠? “파스카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 아닌가요?”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혹은 여러 모임을 통해 성경 공부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다인들의 축제도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이렇게 한 번 여쭤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파스카’라는 말이 당신의 삶과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나요?”

어떠세요? 답이 금방 떠올려지시나요? 아마도, 앞서 처음의 물음에는 쉽게 대답하셨던 분들도 이 두 번째 물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실 겁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대답이 떠오를 수도 있겠죠. “파스카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나도 내 삶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뭐 이 정도의 의미 아닐까?” 아니면 “파스카는 부활, 곧 영원한 생명이니까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파스카가 나에게 주는 의미 아닐까?” 하면서 말이죠. 그럼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모습입니까?”


사실 앞서 드린 물음, 즉 파스카가 우리의 삶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은 한 번에 쉽게 답할 수 있는 물음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에 계속해서 묵상하고 성찰하면서 답을 찾아야 하는 물음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카라는 말과 내 삶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찾기 어렵게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이 말을 명사로만 알아듣고 있다는 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말 자체가 ‘건너가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파스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다인 축제’ ‘부활’ ‘파스카 성삼일’ ‘신비’와 같은 명사들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들이 모두 우리 신앙과 관련이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신앙인인 나의 삶과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은 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상관이 있는지는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건너가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알아듣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파스카’라는 것과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가까워집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수없이 많이 건너가고 있으니까요. 길을 건너기도 하고 다리를 건너기도 합니다. 어려운 순간들, 시험이나 또 다른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면서 그 순간을 건너 지나갑니다. 더 단순하게는 매일의 삶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어제에서 오늘로 또 오늘에서 내일로 매일매일을 건너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는 신앙 안에서의 근본적인 건너감의 모습에 대해서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것이 있었죠?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으로 건너가는 것, 인정받기를 추구하는 삶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고 누리는 삶으로 건너가는 것, 뿌리 깊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을 닮은 ‘너’ 중심의 삶으로 건너가는 것들이 바로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건너감의 내용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이 연재기사를 시작하면서 다루어왔던 모든 내용들이 바로 이 건너가는 행위인 파스카의 내용이 됩니다.

기억하시나요? 우리의 기도생활이라는 것이 정해진 형식과 시간에 맞추어 바치는 좁은 의미의 기도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을요. 비록 우리 자신은 하느님을 잊고 지내기도 하고 또 고통스러운 순간에 함께 계시지 않는 듯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우리 모두가 육신과 정신을 지닌 존재이지만, 육의 욕망을 따르는 육적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영적 인간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결국 우리 신앙의 삶은 끊임없이 건너가는 삶입니다. 하느님을 지식으로만 알던 상태에서 참되게 하느님을 알아가는 삶으로 건너가는 것이죠. 정해진 기도를 잘하지 못하니까 영성생활을 잘 못 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모습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깨닫고 그분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격적인 만남을 계속해 가는 모습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부담을 느끼며 겨우겨우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에서 훨씬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내 자신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들으면서 신앙생활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계속해서 건너가는 삶이라고 한다면, ‘건너가다’라는 동사로서의 의미를 담아, 우리의 삶은 곧 매일매일 파스카하는 삶이 됩니다. 파스카라는 것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이 성경에나 나오는 유다인들의 축제인 것만도 아니고,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누리실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매일의 삶 속에서 평범하게 또 단순하게 겪을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세요? 이쯤 되면, 파스카라는 것이 우리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로 주어지는지 조금은 더 쉽게 와 닿지 않나요? 신앙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매 순간 이러한 건너감, 파스카를 이루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눌 때 “안녕하세요?”라는 말 대신 이렇게 인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파스카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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