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료 19번째 - 시편 3편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기도 자료 19,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술 10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시편 3편



제가 마음을 기울이는 첫 째 시편은 깊은 신뢰로 점철된 단원과 청원의 시편입니다. 기도자가 처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가 터져 나오는데 이 기도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이 바탕을 이룹니다.

바로 시편 3편입니다.(시편 3편을 꼭 읽어보시면서 함께 읽으시기 바랍니다)

유다 전승에 따르면 이 시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서 달아날 때 지은 것입니다(1절) 이는 왕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이고 고통스런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왕위를 뺏기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2사무 15장 이하)

이 기도의 배경이 되는, 다윗이 처한 곤경과 그의 두려움은 이 기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한 시편으로 기도드리게 되는 전형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시편 저자의 외침에서 우리는 사무치는 고통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감정들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보도에 따르면 자신의 도성에서 도망가는 다윗은 그러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시편은 주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주님, 저를 괴롭히는 자들이 어찌 이리 많습니까?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이 많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자를 구원하실 성싶으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이 많기도 합니다.”(2-3절) 

기도자는 극적인 어조로 자기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세 번에 걸친 ‘많다’는 단어(어찌 이리 많습니까, 이리 많기도 합니다, 많기도 합니다.)를 통해 '다수多數'라는 의미가 못을 박는 망치질처럼 반복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이 단어들이 어근은 같지만 서로 달라, 위험의 끔찍한 정도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들의 수효가 월등히 많은 것에 대한 강조는 시편 저자가 자신과 자신을 거스르는 자들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기도자가 요청하는 도움의 절박함을 정당화하고 근거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적대자는 많고 우세한 반 면, 기도자는 자신을 거스르는 자들을 상대로 홀로 내던져졌습니다.

시편 저자의 첫 마디는 ‘주님’ 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그의 외침은 하느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세한 힘이 그를 위협하듯 들이치고 있고, 그것이 두려움을 가중시켜 더 크고 끔직해 보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자는 죽음 앞에서 굴복 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하느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가장 먼저 그분께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적대자들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기도자 사이의 유대를 끊고 희생자의 믿음을 손상시키려 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개입 할 수 없으리라 여기며, 하느님께서 결코 그를 구하 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지 물리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까지도 건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자를 구원하실 성싶으냐?”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로써 시편 저자는 마음속 깊이 공격을 당합니다.

 이는 믿는이가 처한 가장 큰 유혹으로서 믿음, 곧 가까이 계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 유혹입니다. 의인은 이 마지막시험을 잘 통과하여 신앙과 진리에 대한 확신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 안에 굳건히 머물며 생명과 진리를 발견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시편은 이 부분에서 우리를 건드립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에 싸일 때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구하지 않고 우리를 모르며, 어쩌면 그럴 가능성조차 지니지 않으신다고 여기도록 유혹을 받습니다. 믿음을 거스르는 유혹이 적대자의 마지막 공격입니다. 우리는 이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하느님과 생명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의 기도자는 믿음으로써 무뢰한의 공격에 답하도록 불리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적대자들은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실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만, 그는 그분을 부릅니다. 그것도 그분을 ‘주님’ 이라 부릅니다. 그러고 난 후 그는 강조하듯 ‘당신’이라 부르며 그분께 향하는데, 이는 굳건한 관계로서 하느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를 에워싼 방패, 저의 영광, 저의 머리를 들어 올려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해 주시네.”(4-5절) 

적대자들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그들은 승리하지 못했는데, 하느님을 믿는 이가 하느님이 자신의 친구이심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신 하느님만이 남으며, ‘많은 이들’에게 이제 유일하신 분께서 마주 서십니다. 그분께서는 많은 적대자들보다 훨씬 크고 강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도움이고 방어이며 구원이십니다. 방패처럼 그분께서는 당신께 자신을 말기는 자를 보호하고 머리를 들게 하시는데, 이는 승리와 개선의 몸짓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적대자들은 앞서 본 것처럼 되치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곤궁에 처한 자의 외침을 들으시고 당신 현존의 장소, 곧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두려움 속에서, 위험 중에, 고통 속에서 부르짖고 도움을 청하며 하느님께서는 답하십니다. 인간의 외침과 신적 답변 사이의 이러한 연관성은 기도의 변증법이자 구세사 전체의 열쇠입니다. 외침은 도움이 필요함을 표현하며 다른 이의 충실힘에 호소합니다. 외쳐 부르는 것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면서 기도 자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고자 하심을 믿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이미 체험하고 믿게 된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데, 하느님의 구원적 응답 안에서 이러한 현존이 온전히 계시됩니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입니다 자신이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고 여기는 시편 저자는 자신을 방패처럼 감싸는 생명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미 졌다고 여기던 자가, 주님께서 자기를 구하셨기에 머리를 들 수 있습니다 궁지에 몰리고 조통 당하던 기도자에게 영예가 들려지는데, 주님께서 그의 영광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시편 저자에게 전적인 안정을 선사합니다. 이제 두려움마저 사라지고 그의 외침은 고요한 평화 속에, 깊은 내적 고요 속에 젖어들었습니다. 

“나 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깨어남은 주님께서 나를 받쳐주시기 때문이니 나를 거슬러 들러선 수많은 무리 앞에서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6-7절) 

위험과 싸움 한가운데서도 기도자는 평안히 잠들 수 있는데, 이는 전적인 신뢰로 자신을 내어말기는 분명한 행위입니다. 주위에 적들이 그를 둘러싸 포위하고 있으며, 그에게 반기를 들고 조롱하며 그를 넘어뜨리려 시도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는 편히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잠듭니다. 그리고 깨어날 때도, 여전히 잠들지 않고(121,3-4) 그를 붙들고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보호자인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죽지 않는 분을 통해 극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본래의 두려움으로 가득찬 밤, 외로움과 불안 가득한 기다림의 고통스런 밤조차도 이제 변합니다. 죽음을 불러일으키던 것이 이제 영원한 분의 현존이 됩니다.

적대자의 집중적이고 격렬한 공격에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현존이, 능가할 수 없는 당신 모든 권능과 함께 대응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신뢰에 찬 말씀을 드린 후 시편 저자는 새로이 기도 드립니다.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3,8ㄱ)괴롭히는 자들이 그들의 희생자를 거슬러 일어납니다.(2절) 하지만 ‘일어나실' 분은 주님이시고 그분께서는 괴롭히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일어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구하고 그의 외침을 들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죽음의 위험과 죽음으로 이 끌 수 있는 유혹으로부터의 해방을 내다보며 끝을 맺습니다.

 당신 자신을 일으키시어 도움을 가져다 달라고 주님께 청원한 후에 기도자는 하느님의 승리를 묘사합니다. 하느님과 그분 구원 계획에 불의하고 잔인한 괴롭힘으로 반대하는 이들의 상징인 적대자들은 퇴치되었습니다. 

주둥이를 얻어맞은 채,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파괴적인 폭력으로 공격할 수도,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하심에 대한 의심이라는 악을 퍼뜨릴 수도 없습니다. 터무니없고 신성 모독적인 그들의 말은 궁극적으로 반박되었고 주님의 구원하시는 개입을 통해 말문을 잃게 되었습니다(8ㄴ절) 그래서 시편 저자는 감사와 찬미 안에서 생명의 하느님을 찬양하는 전례를 연상시키는 말씀으로 기도를 끝맺습니다. “주님께만 구원이 있습니다. 당신 백성 위에 당신의 복을 내려주소서!”(9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시편 3편은 우리에게 신뢰 가득하고 위로에 찬 청원을 소개합니다. 이 시편을 바칠 때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는, 박해받는 의인상인 시편 저자의 마음가짐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고통과 위험 중에, 그리고 몰이해라는 원망과 상처 속에서 시편 말씀들은 위안이 되는 신뢰로 우리 마음을 열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려움과 문제들, 삶의 어두운 시간들 속에서도 언제나 가까이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듣고 대답하시며 당신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구원하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치욕스럽게 피할 때 그랬듯이, 지혜서의 박해받는 의인이 그랬듯이, 그리고 우리 주님 예수께서 골고타에서 그러하셨듯이 하느님 현존을 인식하고 그분의 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무뢰한의 눈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때인, 당신 아드님께서 돌아가신 바로그때, 믿는 모든 이에게 참된 영광과 궁극적인 구원 성취가 계시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을 주시고 우리의 약함 안에서 우리를 도우러 오시며, 모든 두려움과 의심의 고통스런 밤에, 그리고 기나긴 고통의 나날 중에 우리가 신뢰를 가지고 우리의 방패이자 ‘영광’인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겨드리며 믿고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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