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자료 15번째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술 6

기도 자료 15번째 –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술 6


적과 싸우는 예언자의 기도                       


옛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예언자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선포로써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 중 엘리야라는 인물이 부각되는데,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회개로 이끌기 위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님께서는 나의 하느님이시다.’라는 의미이며, 그의 생애는 이 이름에 맞갖게 전개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백성이 주님을 유일하신 하느님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에 온통 쏠려있었습니다.

집회서는 엘리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집회 48,1) 이 불꽃을 통해 이스라엘은 다시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엘리야는 직무를 행하며 여러 상황에서 기도합니다. 그는 자신이 머물렀던 집 과부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1열왕 17,17-24) 그는 여왕 이제벨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광야로 피신하여 지치고 불안한 가운데 하느님께 절규합니다.(19,1-4) 그러나 그가 중재자로서 강한 힘을 발휘한 것은 무엇보다도 카르멜 산 위에서였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당신을 보여주시고 백성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왕기 상권 18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 머물고자 합니다.(성경 구절을 함께 읽어 보세요)


기원전 9세기경 아합 왕 치세 때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노골적인 혼합주의가 일어났습니다. 백성은 주님 외에 믿음직한 우상 바알에게도 흠숭을 드렸는데, 바알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에게는 들판에 풍요를 가져다주고 인간과 가축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힘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모습이 보이지 않고 신비스러운 하느님을 주님으로 따르고 있었을지라도, 백성은 납득이 가고 예상 가능한 신 안에서 안정을 추구했으며, 희생제를 잘 지내면 그 신에게서 풍요와 복지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라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백성은 “두 주인을 섬길 수”(마태 6,24: 루카 16,13)있다는 착각, 무력한 인간의 손으로 만든 신에게도 신뢰를 둠으로써 대답이 없는 전능하신 분에 대한 믿음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사고의 기만적 어리석음을 폭로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카르멜 산 위에 모은 후 결단을 내리게 합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 그러고선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인 예언자는 백성을 홀로 버려두지 않고 진리를 밝힐 표징을 알려주며 백성을 결단을 돕습니다. 그와 바알의 예언자들은 저마다 제물을 준비하고 기도할 것인데, 불을 내려 제물을 태움으로써 응답하는 신이 참된 신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자 엘리야와 바알 신봉자들 간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주님인 구원과 생명의 주님과, 해로움도 끼칠 수 없고 이로움도 줄 수 없으며 헛것에 지나지 않는 말 못하는 우상 사이의 대결입니다. 그리고 신께 향하고 기도하는 데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가지 양식이 서로 대결합니다.

바알 예언자들은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흔들어 대고 황홀경에 빠져 춤추고 관란에 빠져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댔던“(1열왕 18,28)것입니다. 그들은 신을 부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의지했고 신의 응답을 끌어내기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우상의 기만적 현실이 드러납니다. 우상은 인간이 지배하고 인간의 힘으로 조정할 수 있으며 인간 스스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절대 타자이신 분께, 나를 해방해주는 그분과의 관계에 인간이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배제한 채 스스로를 찾으며 절망으로 끝나는 악순환에 인간을 가두어 버립니다. 해방 하시는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을 이기심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나와 사랑과 상호 증여의 차원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착각에 빠진 인간은 우상으로 하여금 인간의 의지를 따르게 하려면 극단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바알 예언자들은 몸에 상처를 입히며 극단적인 모양새로 아이러니한 몸짓을 하며 자신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들의 신에게서 생명의 표징이라는 응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피로 뒤덮습니다. 다시 말해 상징적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뒤덮습니다.


엘리야는 완전히 다른 기도 형태를 취합니다. 그는 백성을 가까이 다가오도록 초대하여 자신의 행위와 기도에 이끌어 들입니다. 그가 바알 예언자들에게 도전한 목적은, 우상을 따르며 믿음의 길에서 이탈한 백성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되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기도와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주연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과 결합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다음 예언자는 “‘너의 이름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31절)가져와 제대 하나를 세웁니다. 이 돌들은 온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또한 백성이 받은 선택과 특별한 사랑, 그리고 구원을 이야기해 주는 구체적인 기억입니다. 엘리야의 전례적 몸짓은 결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제대는 주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거룩한 장소지만, 제대를 구성하는 돌들은 지금 예언자의 중재를 통해 상징적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된 백성을 의미합니다. 백성이 내어줌과 희생제사의 장소인 제대가 된 것입니다.


상징은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참된 하느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신원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느님께 당신을 계시하실 것을 청합니다. 그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신원을 상기시킬 목적으로 세운 열두 개의 돌은 주님께도 당신의 신의를 상기시킵니다. 예언자는 주님의 신의에 호소한 것입니다. 기도의 말들은 의미와 믿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주십시오.”(36-37절: 탈출 32,13-14) 엘리야는 하느님을 성조들의 하느님으로 부르면서 암묵적으로는 신적 약속과 선택과 계약의 역사를 상기시키는데, 이 모든 것은 주님을 당신 백성과 떨어지지 않도록 엮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름이 성조들의 이름과 분리되지 않고 결함되어 있을 정도로 인류 역사에 깊이 연결되셨습니다. 예언자는 이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하느님께서 기억하시어 당신 스스로를 충실한 분으로 증명하시게 하며, 동시에 이스라엘 또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신의를 되찾아 지니게 합니다. 엘리야가 부르는 신적 호칭은 사실 좀 놀랍습니다. 엘리야는 통상적으로 부르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 대신에, 잘 쓰지 않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꾼 것은, 지난 교리교육에서 소개했듯이 설화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한 프니엘이라는 장소에 대한 새 이름과 함께 야뽁 건널목에서 벌어진 야곱의 씨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적 호칭의 변화는 엘리야의 기도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북왕조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유다 곧 남왕조와는 거리를 둡니다. 자신의 근원인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망각한 것처럼 보이는 이 백성은, 엘리야가 성조들의 하느님이자 백성의 하느님이신 분의 이름을 불렀을 때, 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처럼 느낍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심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엘리야가 백성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백성은 자신의 신원에 대한 진리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예언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진리 또한 드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우상숭배의 기만에서 떨어져 나와 구원되도록 그분께서 몸소 개입하시기를 청합니다. 그의 청은 백성이 그들의 참 하느님을 알고 완전히 깨닫게 되어 참 하느님이신 그분을 홀로 따르기로 결심하게 해달라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분으로서 당신 모습 그대로 인식될 수 있고, 그분을 상대화하여 그분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우상들이 그분 곁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신앙이고, ‘들어라 이스라엘’ 본문이 선포하는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신앙인은 하느님의 절대성에 자신의 삶과 힘과 마음을 다해 절대적이고 포괄적인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자는 백성이 회개하도록 기도합니다.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1열왕 18,37) 엘리야는 청원을 통해 하느님께서 행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청합니다. 곧 용서하고 회개로 이끌어 변화시키시는 생명의 주님으로서 당신의 본성에 충실하게, 당신의 온전한 자비 안에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도록 청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버렸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38-39 절) 이 필연적이면서도 끔찍해 보이는 불은 불타는 가시덤불과 시나이 산에서의 신적 계시와 연관되며, 기도에 응 답하고 백성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말 못하고 무능한 신인 바알은 예언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주님은 응답하셨는데, 그것도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분은 번제물만 태운 것이 아니라 제대 주변에 쏟아 부었던 물마저 완전히 말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의심을 품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약함과 회의, 그리고 부족한 믿음위에 하느님의 자비가 내려왔습니다. 텅 빈 우상인 바알은 사라졌고,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던 백성은 진리 의 길을 되찾고 자신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과거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줍니까? 이 이야기는 현재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첫째 계명의 우선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이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우상승배의 종살이에 빠집니다. 우리 시대에는 전체주의적 정부가 이를 보여주었으며, 다양한 형태의 허무주의도 이를 보여줍니다. 그것들은 인간을 우상에, 우상승배에 종속시킵니다. 그것들은 인간을 노예로 만듭니다.


출처: 베네딕도 16세, 기도 중에서





























둘째로, 기도의 우선적인 목표는 회개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입


니다. 다시 말해 회개는 하느님의 불로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느님 마음에 들게 살며 다른 이들을 위해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러합니다. 교부들은 한 예언자에 대한 이 이야기가 미래와 미래의 그리스도에 대한 전조가 된다면 역시 예언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여정


의 한 걸음입니다. 그리고 교부들은 여기서 하느님의 참된 불


을 본다고 말하는데 이는 주님을 십자가에까지, 완전한 자기 내어줌에까지 이끄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참된 섬김은 자


기 스스로를 하느님과 인간에게 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된 섬김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참된 섬김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고 변화시킵니다. 분명 하느님의 불, 곧 사랑의 불은 타오르고 변화시키며 정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진리를 밝혀주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하느님 사랑과, 성령의 불의 은총을 통해 참으로 살아있는 자인 우리는 영과 진리 안에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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